도로는 나라를 연결하지만, 책은 사람의 생각을 연결한다. 한 국가의 수준은 국민들의 사고 깊이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그 사고의 깊이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지표가 바로 ‘독서’다. 책 읽기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불확실한 현실을 해석하며,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길러준다. 특히 위험과 갈등이 일상화된 오늘날, 독서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통찰력’을 키우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대형서점에는 많은 책들로 넘쳐난다. 그럼 우리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단순한 정보서나 자극적인 콘텐츠에 머물러서는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지 않는다. 고전은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묻고, 인문사회 서적은 현실을 구조적으로 이해하게 하며, 과학기술 서적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인간, 사회, 기술을 함께 읽을 때 비로소 입체적 사고가 가능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읽는가’이다.
속독보다는 숙독, 소비보다 사유, 그리고 읽은 뒤 질문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동반될 때 독서는 비로소 힘을 갖는다. 나는 독서의 방법 중에서도 특히 권하고 싶은 것은 ‘필사’다. 문장을 눈으로만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손으로 옮겨 적는 과정은 생각을 붙들고 의미를 곱씹게 하여, 텍스트를 지식이 아니라 내 언어로 체화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 현실은 암담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종합 독서율은 38.5%에 불과하다. 성인 10명 중 6명 이상이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셈이다. 종합 독서율은 2015년 67.4%에서 10년 만에 절반 가까이 감소했고, 연간 독서량 또한 급격하게 줄었다. 특히 종이책 독서율은 28.8% 수준으로, 독서의 기반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제 비교는 더욱 뼈아프다. 우리나라의 독서율은 미국 등 주요 선진국보다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모든 영역에서 크게 낮은 수준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독서를 개인의 취미가 아니라 ‘사회적 인프라’로 관리한다. 현재 전 세계 독서율 1위 국가 스웨덴의 독서율은 약 85.7%로, 국민 대부분이 1년에 최소 한 권 이상의 책을 읽는 높은 수준을 보인다.
스웨덴은 공공도서관이 생활권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일상문화로 체화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대형 쇼핑몰마다 도서관이 입점해 있고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 지하철역 구내에도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한다. 또한 지역에 있는 서점에서는 베스트셀러보다 점장이 추천하는 책을 따로 전시함으로써 서로 간의 취향을 공유하는 등 폭넓은 독서 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미국은 곳곳에 크고 작은 도서관이 있다. 독서 토론 문화와 지역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프랑스는 독립서점과 출판 생태계를 국가가 보호한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독서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적 습관’이라는 점이다.
이제 우리도 독서를 생활 속 일상 습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출퇴근 시간,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 일부를 독서로 전환하는 일상화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 공동체 중심의 독서 문화가 복원되어야 한다. 도서관이 단순한 열람 공간이 아니라 토론과 사유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AI가 지식을 대신 생산하는 시대에서 인간에게 남는 것은 질문하는 능력과 판단하는 힘이다. 이 능력은 깊이 있는 독서만이 가능하게 한다. 결국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각종 기념일과 행사에서 주고받는 선물을 책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수건이나 우산, 기프트콘, 상품권을 주고받는다. 이제는 그 자리에 ‘책’을 놓아보자. 시대를 넘어 검증된 고전, 인간과 사회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인문서, 그리고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 이러한 책이야말로 한 사람의 시야를 넓히고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기념일의 선물은 순간을 기념하지만, 책은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 그래서 책은 가장 오래 남는 선물이자, 품격 있는 선택이다.
독서는 습관이고 문화이다. 문화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책을 읽는 국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지만, 책을 선물하는 사회는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우리 사회를 바꿔 갈 것이다.
결국, 책 읽는 국민이 선진국가를 만든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을 해석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그 힘의 근원에는 언제나 ‘깊이 있는 독서’가 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이 결국 한 사회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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