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와 기소의 분리 등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가 큰 변곡점을 맞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한편에서 국민들은 묻고 있다. “나와 내 가족이 범죄 피해를 보았을 때, 국가는 즉시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가?”
최근 스토킹과 사기 등 범죄 피해자들의 대응 양상에서 우려스러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찰에 신고한 뒤에도 극심한 불안을 느낀 피해자들이 민간 보디가드나 사설탐정을 찾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스스로 증거를 수집하며 대응 전략을 공유한다. 나아가 가해자의 신상 공개나 온라인 응징 같은 ‘사적 제재’에 몰입하는 분위기마저 확산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자구책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국가가 나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다”는 국민의 깊은 불신과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피해자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단순한 법률과 제도가 아니라, ‘국가가 지금 당장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실질적인 체감이다. 그러나 수사가 지연되고 신변 보호에 불안감이 생기는 순간, 피해자는 절차적 정당성보다 눈앞의 안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은 공공기관 대신 사설탐정이나 온라인 모임 등 비공식적 보호망으로 향하게 된다.
문제는 공식적 · 제도적 틀이 없는 민간 영역에 의존하는 ‘사적 구제’가 또 다른 불법을 낳는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서 ‘탐정’이라는 명칭 사용은 가능하지만, 업무 범위, 자격 기준, 윤리 의무, 감독 체계를 규정한 법적 기반은 여전히 부재하다. 그 결과 음성적인 불법 흥신소가 성행하고 사생활 침해, 개인정보 유출, 과도한 금전 요구, 허위·과장 광고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피해자의 절박함을 이용한 불법 행위가 제도권 밖에서 반복되는 구조다. 이런 현상은 실제로 공식적인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온라인 사적 제재 역시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신상 유포는 무고한 피해자를 낳고, 2차 피해와 보복의 악순환을 부른다. 범죄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로 전락하는 역설적인 상황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신호다.
현장의 피해자들은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위험할 때 법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공권력이 문서상으로만 존재할 때 국민은 스스로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는 위험한 사적 구제의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탐정과 같은 민간 안전 영역을 공식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업무 범위와 금지행위, 자격 요건, 개인정보 보호 의무, 행정 감독체계를 명확히 법제화해야 한다. 이는 공공 경찰력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민간의 사실조사 및 자료수집 활동을 법과 원칙 안에서 관리하자는 취지다.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은 이미 일정한 자격과 감독 아래 탐정업을 제도화했다. 우리 사회 역시 더 이상 음성적이고 불투명한 민간조사 시장을 방치해선 안 된다. 법제화의 핵심은 단순한 양성화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기본권을 동시에 보호하는 책임 있는 관리체계 구축에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본질적인 해결책은 국가 공권력 스스로의 신뢰 회복이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도 국민이 위기의 순간에 체감하지 못하면 종이 위의 약속일 뿐이다.
신고 접수부터 사건 종결까지 끊김 없는 신변 보호가 이루어져야 한다. 위험 즉시 작동하는 현장 대응체계, 수사 과정에서의 지속적인 소통, 사건 이후의 재발 방지 및 회복 지원까지 이어지는 따뜻한 사후 관리가 필수적이다.
국가의 역할은 “신고하십시오”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민이 신고 후 “실제로 안전해졌다”고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법치국가가 제공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
이제 국가는 두 가지 과제에 동시에 응답해야 한다. 탐정업을 제도화하여 민간 영역의 불법을 차단하는 일, 그리고 공권력의 대응 속도와 보호체계를 개선해 사적 제재에 의존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국가보다 사적 해결을 먼저 찾는 사회는 건강한 법치 사회가 아니다. 법제화된 탐정제도와 신뢰받는 공권력이라는 두 축을 함께 세울 때, 비로소 국민은 다시 국가의 보호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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