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기창 안동시장
안동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을 선포한 지 어느덧 20년을 맞았다.
20년 전의 선포는 단순히 차별화된 도시 브랜드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안동인이 만들고 지켜온 정신문화의 가치를 대한민국 앞에 당당히 밝히고, 사람 중심의 세상을 향한 안동의 책임을 스스로 다짐한 엄숙한 선언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세상은 눈부시게 달라졌다. 인공지능(AI)의 등장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누리고 있지만, 효율과 속도, 경쟁만을 앞세운 물질만능주의는 심각한 인간 소외와 공동체 붕괴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더 빠른 사회가 반드시 더 나은 사회인가’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인류가 다시 주목하는 해답이 바로 사람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는 유교문화이자 인본주의 정신이다.
본래 안동은 유교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추로지향(鄒魯之鄕)이자 인문정신의 본향이다. 유교문화는 중국 산둥에서 공자로부터 시작됐지만, 안동 도산에서 퇴계 이황의 성리학을 거치며 우리 삶에 깊이 뿌리내렸다. 안동의 유교는 박제된 학문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고 실천하는 살아 있는 시대정신이었다.
이 정신은 우리 역사 속에서 늘 증명되어 왔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석주 이상룡 선생처럼 목숨과 전 재산을 바쳐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고, 나라가 평화로울 때는 농암 이현보 선생처럼 가정에서 효(孝)와 예(禮)를 다했으며, 퇴계 선생처럼 겸손의 자세로 끊임없이 후학을 양성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구국과 효, 그리고 교육이라는 실천적 유산이 바로 안동 정신의 뿌리다.
특히 안동의 정신은 결코 닫혀있거나 독단적이지 않다. 유교문화의 중심지이면서도 불교문화의 정수인 봉정사가 공존하고, 천주교와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서로를 존중하며 아름다운 지형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대립 대신 포용을, 갈등 대신 화합을 추구하는 ‘상생과 융화’야말로 오늘날 갈등의 시대를 치유할 정신문화의 진짜 힘이다.
이제 안동은 이 고귀한 정신문화를 단순히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도시의 미래와 세계를 향해 확장해 나가고 있다. 매년 개최하는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은 안동의 정신으로 인류가 직면한 현대적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세계적 담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으며, ‘세계인문도시네트워크’와 ‘K-인성인문교육’을 통해 행정과 교육의 영역에서 사람 중심의 가치를 실현해내고 있다.
영토에는 국경이 있어도 문화에는 국경이 없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이웃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해 온 안동의 정신은 AI시대와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인에게도 필요한 보편적 가치다.
이제 안동은 21세기 인문가치포럼, 세계인문도시네트워크, K-인성인문교육을 통해 이 가치를 더 넓은 세계와 나누고자 한다. 20주년은 지나온 시간을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라, 안동 정신문화의 세계화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안동다움이 대한민국다움으로, 안동의 정신문화가 인류 공존의 길을 밝히는 가치로 빛날 수 있도록 ‘오직 안동, 오로지 시민’을 바라보며 다음 20년의 문을 힘차게 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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