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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새겨진 ‘卍’…조선의 책문화에 남은 불교의 흔적

  • 김영동 기자
  • 입력 2026.05.1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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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국학진흥원, 부처님 오신 날 맞아 능화판 속 상징성 조명
  • 실용·미감 결합한 조선시대 장정문화…고서 문양 70% 이상이 ‘만자문’
  • 억불의 시대에도 이어진 길상과 장엄의 상징

 

능화판, 경주 밀성박씨 손곡문중 기탁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소장.png
능화판, 경주 밀성박씨 손곡문중 기탁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조선시대 책 표지에 새겨진 ‘卍(만)’ 문양의 의미와 전통 책문화 속 불교적 상징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능화판 가운데 ‘卍자문’이 지닌 상징성과 조선시대 장정문화의 특징을 소개하며, 전통 기록문화 속에 남아 있는 불교적 흔적을 조명했다고 밝혔다.


능화판은 책 표지에 문양을 찍어내기 위해 사용한 목판이다. 조선시대 전적 장정문화에서 실용성과 심미성을 함께 보여주는 대표적 도구로 꼽힌다. 능화판으로 찍어낸 표지는 단순 장식이 아니라 습기와 충해를 막는 기능도 맡았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능화표지 제작에는 황염 처리한 종이와 배접지, 교말, 밀랍, 능화판 등이 사용됐다. 특히 밀랍은 문양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광택과 방습 효과를 더했다. 황벽과 치자 등 천연 염료는 방충·항균 기능까지 갖춰 책 보존성을 높였다.


능화표지 문양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된 것은 ‘卍자문’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연보상화문과 연화문, 귀갑문이 주로 쓰였지만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卍자문 사용이 급격히 늘었고, 조선 말기에는 대부분의 표지 문양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능화판, 창녕조씨 지산종택 기탁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소장.png
능화판, 창녕조씨 지산종택 기탁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고서 1천200여 권의 능화표지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卍자문은 전체 문양의 7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역천견록』과 동의보감 등 다양한 전적 표지에서도 반복 배열된 만자문이 확인된다. 불서뿐 아니라 의서와 유서, 근대 전적까지 폭넓게 활용됐다는 의미다.


한국국학진흥원은 능화표지의 전통이 고려시대 사경과 불전 장식문화에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본래 ‘卍’은 산스크리트어 ‘스바스티카(svastika)’에서 유래한 상징으로, 불교에서는 길상과 부처의 경지를 뜻하는 문양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조선이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지만 생활문화와 공예, 책 장정문화 속에서는 불교적 요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오히려 卍자문은 시간이 흐르며 종교적 의미를 넘어 길상성과 장엄성을 상징하는 장식 문양으로 자리 잡았고, 반복 배열이 쉬운 기하학적 특징 덕분에 책 표지 문양으로 꾸준히 사용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능화판 문양은 단순 장식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과 미감, 책을 대하는 태도를 담고 있다”며 “卍자문 능화판은 조선시대 책문화의 깊이와 품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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