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북 경산시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건 피의자와 관련해 최근 8개월 동안 세 차례 112 신고가 접수됐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전날에는 주민의 고소도 접수됐다. 그러나 고소 사건이 처리되기 전에 방화 사건이 발생했고, 1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치는 참사로 이어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피의자는 오랜 기간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주민들을 상대로 반복적인 민원과 소란을 일으켰으며, 그 과정에서 관리사무소 직원이 여러 차례 교체될 정도였다고 한다. 여러 이상 징후와 갈등이 있었지만, 그것이 심각한 범죄로 발전하기 전에 적절하게 조정되고 관리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대응체계를 돌아보게 한다.
피의자가 실제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더라도, 현행 법률 아래에서 경찰관이 범죄 발생 전에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극히 제한적이다.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에 출동하고, 피해 사실을 확인하며, 법률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경찰의 기본 임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이 미리 막았어야 했다”는 비판만으로는 충분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 경찰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 갈등을 지역사회가 어떻게 나누어 맡을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반복되는 신고와 민원, 위협적인 언행, 특정 기관이나 사람에 대한 집착은 범죄가 확정되기 전이라도 지역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신호다.
오늘날 이웃 간 갈등은 층간소음, 주차 문제, 담배 연기, 반려동물의 소음과 배설물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사소한 불편에서 출발하지만, 당사자의 감정이 격해지면 모욕과 협박, 보복행위로 확대될 수 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 정신건강 문제 등이 겹치면 갈등을 합리적으로 풀어갈 여유가 줄어든다.
과거에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 서로의 사정을 알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살피며, 생활 속 불편도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공동체의 힘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아파트 생활은 익명성을 확대했다. 같은 건물에 살면서도 서로의 삶을 알지 못하고, 갈등이 발생하면 대화보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민원, 신고부터 찾는 경우가 많다.
이제 이웃 간 분쟁을 단순한 개인 간 감정싸움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주민자치회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사무소가 중심이 되어 사전에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층간소음이나 주차 문제처럼 반복되는 분쟁에는 중립적인 조정 담당자를 두고, 감정 충돌이 심해지기 전에 당사자들이 대화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모든 민원과 갈등 대응을 관리사무소 직원에게만 맡기는 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주요 선진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에서는 소음과 주차, 반려동물 문제 등 이웃 간 분쟁에 대해 중립적인 제3자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합의점을 찾도록 돕는 지역사회 중재가 활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고령자와 치매 환자,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인 주민을 지역사회가 함께 살피는 복지체계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주민 지도자와 상담가, 사회복지사 등이 갈등 당사자에게 접근해 폭력으로 번지기 전에 중재하는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우리 지역에도 이와 같은 ‘따뜻하고 촘촘한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 행정복지센터와 파출소·지구대, 보건지소, 주민자치회,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이·통장연합회 등이 협력하는 지역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물론 개인정보 보호와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누군가를 위험인물로 낙인찍거나 감시 대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다만 반복적인 신고와 위협, 사회적 고립, 생활고 등이 함께 나타날 경우에는 관련 기관이 각자의 영역에서 필요한 지원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민, 독거노인, 은둔형 외톨이,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이웃이 적지 않다.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경찰과 소방, 사법기관이 개입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맞춤형 복지와 상담, 건강관리, 일자리 지원, 외국인 주민을 위한 생활 안내, 정기적인 안부 확인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경찰 역시 신고 현장에 출동해 사건을 처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반복 신고의 원인과 위험 요인을 지역의 복지·상담체계와 연계하는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경찰이 모든 문제를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경찰이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행정과 복지, 의료, 주민조직이 함께 책임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공동체 치안과 협력 치안, 자치경찰의 활성화가 필요한 것이다.
안전은 범죄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주민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갈등이 폭발하기 전에 누군가가 귀 기울이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 공동체와 다시 연결되는 상태까지 포함한다. 처벌과 단속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갈등 당사자를 배제하기 전에 대화의 기회를 제공하고, 위험 신호가 발견되면 비난보다 지원을 먼저 연결해야 한다.
경산 아파트 방화 사건은 한 개인의 분노가 얼마나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그 분노의 징후를 발견하고도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지는 않았는지 성찰하게 한다.
이웃 간의 따뜻한 관심은 갈등이 폭력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고 공동체의 회복력을 높이는 현실적인 안전정책이다. 가장 촘촘한 사회 안전망은 거창한 시설이나 구호가 아니라, 우리 곁의 이웃을 살피는 사람들의 관심과 공동체의 지속적인 소통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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