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쳐도 절대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두 학생이 서명한 각서에 적힌 내용이다. 보호장구도, 정해진 규칙도 없다. 오로지 맨몸으로 상대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주변의 아이들은 휴대전화로 그 장면을 촬영한다. 이른바 격투기 콘텐츠에서 유래한 '야차룰'이 이제 학교 현장에까지 침투해 잔혹한 학교폭력의 변종으로 악화되고 있다.
야차룰은 규칙과 보호장비 없이 벌이는 무제한적인 길거리 싸움을 일컫는 말이다. 당초 일부 성인의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나 싸움 문화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와 경찰청은 지난 8월 야차룰에 대해 ‘신종 유형 발생경보 제11호’를 발령했다. 단순한 아이들의 주먹다짐이나 놀이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공식적인 경고인 셈이다.
야차룰은 결코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상호 합의’라는 외형 뒤에 지능적이고 악의적인 폭력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당사자 간 합의에 따른 대등한 싸움처럼 보이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힘의 우위를 점한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싸움을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피해 학생이 폭력에 맞서 대응하면 가해 학생은 “쌍방 폭행이다”, “너도 나를 때렸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떠넘긴다. 각서를 내세워 피해 학생이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기도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야차룰은 2차 범죄로 확산될 수 있다. 싸움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유튜브, 엑스(X),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가고,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한 자극적인 콘텐츠로 소비된다. 나아가 해당 영상은 피해 학생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영상을 삭제하고 싶으면 돈을 가져오라”고 요구하거나, 단체대화방에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갈취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이버 도박 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야차룰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동급생으로부터 수백만 원을 빼앗은 중학생들이 검찰에 송치된 사건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서로 합의하고 싸운 것인데 무슨 범죄냐”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법률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우리 형법상 당사자 간의 합의나 각서가 모든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형법 제24조의 ‘피해자의 승낙’도 사회상규에 반하는 신체 침해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판례와 법원의 일관된 태도다.
따라서 “다쳐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작성했더라도 폭행이나 상해의 성립 여부가 자동으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행위의 경위와 폭력의 정도, 상해 발생 여부, 강요나 위력의 행사 여부 등에 따라 형법 제260조의 폭행죄나 제257조의 상해죄 등이 성립할 수 있다. 구체적인 죄명과 처벌 수위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된다.
싸움을 부추기거나 망을 보는 행위도 단순한 구경으로만 볼 수 없다.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과 역할에 따라 폭행이나 상해의 공동정범 또는 방조범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싸움 영상을 촬영해 온라인에 유포하거나, 이를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하고 금품을 요구할 경우에는 사안에 따라 명예훼손, 협박, 공갈 등의 범죄가 추가로 문제 될 수 있다. 영상에 성적 내용이 포함된 경우에는 별도의 법률이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학교 차원에서도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른 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 사안의 정도에 따라 서면사과, 접촉·협박·보복행위 금지,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등 다양한 조치가 내려질 수 있으며, 중대한 경우에는 퇴학 처분까지 이어질 수 있다.
더 이상 야차룰을 청소년기의 장난이나 단순한 놀이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경찰과 교육 당국의 근본적이고 다각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먼저 학교전담경찰관(SPO)을 중심으로 야차룰에 대한 실태 파악과 신속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야차룰 제보나 관련 정황이 포착되면 이를 단순한 쌍방 폭행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두 학생의 평소 관계, 학교 내 위계 구조, 폭행을 누가 제안하거나 강요했는지, 각서가 자발적으로 작성된 것인지 등을 면밀히 조사해 가해 학생의 실질적인 행위를 밝혀내야 한다.
또한, 사이버범죄 수사 부서와의 공조를 강화해 2차 피해를 차단해야 한다. 야차룰 영상이 유포되는 SNS와 단체대화방을 신속히 확인하고, 피해 영상에 대해서는 삭제와 차단 조치를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영상을 촬영·유포하거나 이를 이용해 협박과 금품 요구를 한 가담자에 대해서도 역할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예방교육의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싸우면 안 된다”고 훈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상호 합의나 각서가 폭력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점, 촬영과 유포가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방관하거나 부추긴 학생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인 사례 중심으로 교육해야 한다.
야차룰은 격투기가 아니다. 엄연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잔혹한 폭력이며,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학교폭력이다. 자극적인 영상과 잘못된 영웅심에 빠져 자신의 인생은 물론 타인의 인생까지 망치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와 경찰, 학교, 가정이 함께 야차룰의 위험성을 직시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때다. 폭력에 합의란 있을 수 없고, 각서가 책임을 지워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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