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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률 94% 시대의 그늘… 서울 절반 땅은 여전히 ‘임자 없는 묘지’

  • 김영동 기자
  • 입력 2026.09.2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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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0년 전 퇴계 이황도 고민한 묘소 관리, “재실에서 함께 지내도 무방”
  • 안동 종가의 지혜… 합동 묘제부터 자연 환원까지 ‘묘제 패러다임’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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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언행록 표지_우계이씨 종택 기탁자료

 국내 화장률이 94%에 육박하며 매장 중심의 장묘 문화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사망자 10명 중 9명 이상이 화장을 선택하는 시대다. 하지만 국토의 한편에는 여전히 과거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국토교통부 지적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묘지’ 면적은 283.3㎢로, 서울시 전체 면적의 절반에 이른다. 지목상 공원이나 학교용지에 육박하는 규모의 땅이 조상 묘소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전국 산야를 차지하고 있다.


화장은 늘었지만 이미 조성된 선대의 묘소를 누구까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는 오늘날 남겨진 이들의 커다란 숙제다. 핵가족화와 농촌의 고령화, 후손들의 도시 이동이 맞물리면서 벌초와 성묘를 위해 여러 묘소를 찾아다니는 일은 해가 갈수록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묘제를 반드시 묘소에서 지내야 하는가’라는 고민은 비단 현대인의 것만은 아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기록에 따르면, 500여 년 전 조선의 대유학자 퇴계 이황 역시 같은 문제에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제자 김부륜이 여러 묘소를 오르내리느라 정성이 해이해질까 걱정이라며 재실에서 제사를 지내는 방안을 묻자, 퇴계는 “무방하다”고 답했다. 나아가 정결한 곳에 제단을 마련해 합동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좋다”고 밝혔다. 당시 퇴계는 “지금 사람들은 묘제를 지낼 때 반드시 묘소에 가지만 이는 원래의 예법이 아니며, 옛사람들은 정성이 깃든 곳에 신이 내린다고 여겼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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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보백당종택 재실 묘제

 이 같은 유학의 본질적 지혜는 오늘날 안동의 종가들에서 현대적인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 안동김씨 보백당종가는 20여 년 전부터 산속에 흩어진 묘소를 찾아가는 대신 재실에서 합동으로 묘제를 올린다. 진성이씨 퇴계종가와 노송정종가 역시 종택 제청에 위패를 모시고 한자리에서 제를 올리며 후손들의 부담을 줄였다.

사진2-3.진성이씨 주촌종가 추모제단.png
진성이씨 주촌종가 추모제단

 더 나아가 묘소 자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파격적인 변화도 등장했다. 진성이씨 주촌종가는 추모제단을 마련해 50여 위의 묘제를 함께 지내는 한편, 고조부 윗대의 묘소는 더 이상 벌초하지 않고 자연에 맡기는 결정을 내렸다. 기존 묘소를 파묘해 봉안시설로 옮기는 번거로운 방식 대신, 무덤이 서서히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화장률 94%라는 숫자 뒤에는 여전히 국토를 채우고 있는 거대한 묘지 면적과, 이를 관리해야 하는 후손들의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500년 전 퇴계의 가르침과 안동 종가들이 보여주는 실용적 다짐은, 올 추석 성묘길에 나선 우리 사회에 조상을 기리는 본질과 현실적 관리 사이의 훌륭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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